<아메리칸 스나이퍼> 방향 잃은 조준경을 바라보며(스포有)
<아메리칸 스나이퍼> 방향 잃은 조준경을 바라보며(스포有)

돌아보면 내 20대는 늘 혼란스러웠다. 무언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았다. 대학교 입학부터 성적, 졸업까지 늘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며 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뿌듯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추구하고 누리고 있었던 적당한 학교, 적당한 성적, 적당한 생활은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잃어버리게 했다. 안정감이 주는 안락함 때문에 리스크를 피했고, 항상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주변에서 항상 말해왔던 안정적인 인생이라는 틀만을 바라보다 보니, 정작 내 인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에 대해선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늘 혼란스러웠다.

"한쪽 눈 감고 조준했나?"
"한쪽 눈을 감으면 다른 것들이 안 보입니다."
영화 초반, 왜 양쪽 눈을 모두 뜨냐는 교관은 크리스가 표적을 오조준할 것을 우려하지만, 크리스는 주위의 다른 것들을 보기 위해 양쪽 눈을 모두 뜬다고 답한다. 그렇게 그는 눈앞의 표적에 대한 날카로운 명중률을 보여주면서도, 그렇게 그는 조준경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조준경 밖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임무가 이어지면서, 그는 갈등하면서도 점점 조준경 속의 적들에게, 눈앞의 목표에 몰입하게 된다. 결국 크리스는 부대를 위협하고 있던 마지막 타깃까지 성공적으로 사살했으나, 그의 얼굴에서는 기쁨이나 안도감이 아닌, 공허한 표정만이 느껴진다.

크리스도 어쩌면 눈앞의 적, 조준경이라는 틀에 갇혀 그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건 아닐까. 우연한 기회로 입대해 수많은 훈련을 버텨냈고, 곳곳에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도사리는 파병지에서 전력을 엄호하는 수호자였지만,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만큼 그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점점 커지기만 한다. 적군과 아군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감정과 이성, 동료, 임무.. 운명과 선택의 셀 수 없는 갈림길에 허우적대고 있는 그에게 이 모든 것은 사명감으로 덮어놓기엔 너무 버거운 짐이였다. 빠르게 판단하고 당겨야 하는 그의 방아쇠는 그로 하여금 점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으리라. 결국 그는 한발씩,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눈앞의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언제나 적군을 정조준하던 전설적인 저격수였지만, 오히려 그는 동료를, 사랑하는 가족을, 무엇보다도 자신 스스로마저 지켜낼 수 없었다.

영화 내내, 화면은 조준경을 통해 표적을 확인하는 저격수의 시점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도무지 보이지 않을 먼 거리의 적이 십자모양 조준선 안에 커다랗게 보인다. 그것을 쏘아 맞추는 것이 지금 저격수의 유일한 임무이고 목표이다. 하지만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 크리스는 정작 그것을 맞출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정작 전장에서 크리스는 방아쇠를 당기냐 마냐의 기로에서 끝없이 고민한다. 그는 차라리 누군가 지금 이순간 명령해 줬으면, 이 짓눌리는 짐을 누군가 덜어줬으면 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절박한 심정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혹자는 이 영화를 그저 미국우월주의가 돋보이는 전쟁영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느낀 바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영화를 넘어, '크리스 카일'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휴먼무비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더욱 전쟁 속의 인간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참혹함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그러한 전쟁 영화라고 느껴진다. 그만큼 국가에 대한 애국심, 임무에 대한 책임을 모두 떠나 크리스가 가지는 개인적인 고뇌를 잘 표현해낸 심도깊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흔히들 어떤 것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얘기를 한다. 무언가 일을 수행할 때 그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번역하면 '위험'보다는, '불확실성'에 가깝다고 한다. 불확실함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확실함'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조건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불확실함을 의미하는 아니라, 그저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떠할 것이다, 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일인 것 뿐이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많든 적든 리스크를 안고 살고 있음을 안다. 인생에 확실한 조준선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자. 불안하겠지만 감았던 한 쪽눈 또한 뜰 수 있다면, 누군가 쥐어준 조준경 속의 목표를 좇는 것이 아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스스로 겨냥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