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흥미롭다.
늘 가장 가까이서 나에게 특별한 맛을 선물하면서도,
반대로 어쩌면 무한한 요리의 진가를 모르는 나에게 한없이 멀기만 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비롭다.
그렇다면 영화 <더셰프>는 어떨까.
늘 영화에서 봐왔듯 너나 할거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주방,
조개 30초 더 익혔다고 하늘이 무너질듯 호통치는 셰프까지.
누군가는 드라마 <파스타>의 이선균이,
누군가는 아론 에크하트 주연의 <사랑의 레시피>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니라기엔 너무나 플롯이 흡사하고 때문에 <더 셰프> 또한 진부한 요리영화의 일맥이라고 느껴진다.
개연성없는 전개도 한 몫 한다.
<더 셰프> 또한 별로 친절한 축에 속하진 않는다.
배신했던 동료와 뜬금없이 한 주방에서 일하고,
생뚱맞게 전 애인이 내 빚을 갚아주고,
또 사랑이 없으면 섭섭할까봐 여주인공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지는 것까지.
인물 묘사나 스토리와는 관계없는 '뜬금없는' 장면들이 많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간절히도 영화 더 셰프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그 자유분방한 개연성이 마치 하나의 신선한 재료로 느껴져서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절대 이 영화의 소재가 참신하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내가 싫어했던 음식을 우연히 먹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너무 들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물론 요즈음 상황이 이래서일수도 있다. 생활방역에 힘쓰느라 오래도록 마음편히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했던..
그 때문에 부대끼는 사람냄새가 그리웠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당연히도 여기에 공감하지 못 하고 '이 영화는 덜 만든 영화다' 라는 사람이 있겠고,
나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클리셰에 완성도도 떨어지는 영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확신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서는 확실히 기분좋은 맛이 난다.
아주 신선하고, 내 어떤 곳을 깨우는 맛.
더 셰프의 영제는 <Burnt>, 불에 탄 어떤 것을 의미한다.
불에 탄 무언가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셰프의 열정일 수도 있겠고,
완벽한 요리를 해내려는 주인공의 강박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내 사활을 걸었던 시험이 한순간에 떨어질 수도 있고,
행복하게 세웠던 여행계획이 한꺼번에 어그러질 때도 있다.
인생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당연하게도 요리 또한 마찬가지다.
미슐랭 위원을 사로잡기 위해 인생을 걸고 요리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평소처럼 준비했던 요리에 생각지도 못한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인생은 탄 요리같다.
아무리 레시피를 보고 똑같이 만들어도,
사람인지라 조금 탈 수도 있다. 심하면 많이 탈 수도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요리가 내 마음에 들지 않듯이, 인생도 똑같다.
그리고 조금 타면 어떠랴. 다시 차근차근 하면 언젠가는 모두를 놀라게 할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꼭 똑같은 요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하다못해 컵라면이라도 끓이면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평소처럼 해. 모두 같이."
그래서 더 이 영화가 진실해보인다는 점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된다면야 두려워하고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성공을 꿈꾸다 좌절하고, 허탈해하고, 항상 누군가를 배신하면서도 누군가의 배신에 몸서리치고,
또 사랑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다. 사람은 거기서 사람다움을 느낀다.
온몸으로 부대끼며 만나는 사람냄새가 그리운 요즘의 나에게
이 영화는 '요리' 라는 소재 이상의 신비로움을 선사했다.
사람 일이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개연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자미를 30초 더 구웠다고 세상이 무너질듯 소리치는 셰프의 열정은 나에게 가장 먼 일이지만,
내가 가장 완벽해지고 싶은 사람 앞에서 세차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보는 것과 같아 이해되기도 한다.
가장 완벽하고 싶은 내용을 가진, 가장 완벽하지 못한 영화.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영화.
'인쓰의 영화 리뷰 >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0 : 제국의부활> 300의 의지, 내가 받겠다! - 300과의 완전비교 리뷰(스포o) (0) | 2020.10.11 |
---|---|
<300> 디스 이즈 스파르타! 언제 봐도 뜨거워지는 전투액션계의 문화유산 (스포o) (0) | 2020.10.09 |
<미드나잇인파리> 파리에서 떠나는 현재로의 시간여행 (스포有) (0) | 2020.10.07 |
<어카운턴트>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에게 (스포有) (0) | 2020.09.27 |
<아메리칸 스나이퍼> 방향 잃은 조준경을 바라보며(스포有) (0) | 2020.09.24 |